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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기타/그냥 잡담 등등

9. The Enforcer - Ørsted, Denmark

by 하악화학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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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르스테드는 에너지 전환에서, 포스터속 아이라고 할 정도로 대표 주자입니다. 한때 덴마크의 석유 가스 사업의 초석이었던 회사는 풍력 발전의 거물로 변모했습니다. 20 이내에 회사의 거의 모든 탄소 배출량을 제거할 예정입니다. 덴마크 석유 천연가스(Danish Oil and Natural Gas, DONG)에서 청정 에너지 대기업으로 성장한 외르스테드의 이야기는 세계 경영대학원의 사례 연구 자료가 되어 변화하는 시대에 신중한 계획과 선견지명이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줍니다.1 정치인들은 외르스테드를 예로 들면서, 기업들이 부를 창출하는 동시에, 미래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친환경적인 길을 따르도록 유도합니다.2 기후 운동가들은 대형 석유 회사가 청정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이 어렵다는 변명을 늘어놓을 때, 지적하는 사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외르스테드의 성공은, 정부 정책과 시기적절한 보조금 지원만큼이나 기업 리더십의 공이 크다고 있습니다. 외르스테드의 혁신은 향후 수십 동안 화석 연료 기업이 해야 일을 보여주는 청사진을 제공할 있겠지만, 외르스테드와 같은 기업이 형성되고 번창할 있는 공간을 만든 덴마크의 수십 년에 걸친 에너지 역사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완전한 청사진이나 계획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는 많은 에너지 전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석유 위기가 시작점 입니다.

 

1973 석유 위기는 대부분의 부유한 서구 경제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만큼 변화를 겪은 나라도 없었을 것입니다. 1973 10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금수 조치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동맹국들의 표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1, 덴마크 총리는 비공개 회의에서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습니다.3 결과 유가는 300% 이상 폭등했고, 국가 전체가 연료 부족에 시달릴 위험에 처했습니다.

 

덴마크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당시 덴마크 에너지의 90% 석유를 태우는 방식으로 얻었고, 석유는 거의 전량 중동에서 수입되었습니다. 금수 조치가 내려진 덴마크는 석유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제한 속도 낮추기, 가로등 소등, 일요일 자동차 사용 금지, 짧고 차가운 샤워 등, 석유에 의존하는 다른 서구 국가들과 유사한 정책을 많이 추진했습니다. 모든 것이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조금 도움이 되었지만, 충격은 시민과 국가의 정계 재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 코펜하겐의 중앙 정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앤더스 엘드럽은 "덴마크 사회에 매우 극적인 각성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말했습니다. "정치인들은 "다시는 된다" 말했습니다. 엘드럽은 이후 DONG 최고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10 동안 민간 업계의 지원을 받아 에너지 공급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정부 주도의 일련의 심층 개혁이 진행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는 이제 6단계 계획으로 이해해 볼 있습니다:

 

1. 석유를 연소하는 발전소를 석탄 연소로 전환합니다. 대부분의 석유는 아랍 국가에서 생산되지만, 석탄은 미국과 같은 동맹국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수입할 있습니다.

 

2. 석유와 가스를 직접 추출합니다. 최근 덴마크 북해에서의 발견으로 이를 실현할 있게 되었습니다.

 

3. 에너지 효율화 조치를 통해 전반적인 에너지 사용량을 줄입니다. 사용하지 않은 만큼 연료를 절약하는 것입니다.

 

4. 발전소의 잔열을 가정 난방에 사용합니다. 이렇게 하면 연료 연소량을 늘리지 않고도 발전소에서 추출할 있는 가용 에너지의 양을 늘릴 있습니다.

 

5. 가정과 산업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에너지로 전환하세요. 쓰레기를 매립하는 대신 태우면, 연료수요를 대체할 있습니다.

 

6. 덴마크가 축복받은, 풍부한 바람을 활용할 방법을 찾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기후 변화가 가장 걱정거리가 아니었지만, 덴마크가 시점에서 취한 많은 조치가 오늘날 세계 국가들이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취해야 조치임이 밝혀졌습니다.

 

먼저 정부가 이러한 개혁을 어떻게 실행했는지 살펴봅시다. 덴마크의 지도자들은 석유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수입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덴마크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1972 정부는 북해에서 새로 발견된 석유와 가스를 개발하기 위해 별도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석유 위기가 시작된 회사들은 합병하여 DONG 설립했고, 이는 기존의 노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1976 덴마크 에너지청(DEA) 설립되었습니다. 에너지 시스템은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DEA 다양한 에너지원과 다양한 유형의 소비자를 위한 정책에 대해 정부에 조언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풍력 발전 개발을 촉진하고 최신 터빈 배치를 위한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4

 

이웃 스웨덴은 화석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원자력 발전을 받아들였지만, 덴마크는 이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이로 인해 덴마크 정부는 1985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금지했습니다. 석유도 선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덴마크는 석탄, 풍력, 천연가스, 바이오매스, 폐기물 여전히 이용할 있는 연료를 극대화하는 집중해야 했습니다.

 

1973 정부가 석유 사용을 줄이기 위해 취한 즉각적인 조치 외에도, 장기적인 석유 수요는, 보다 효율적인 공급이 추진을 위한 일련의 법률과 행정 명령 이후에, 감소했습니다. 국가 에너지 소비의 절반 조금 안되는 정도 수준에서 가정과 상업용 건물에서 발생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난방 수요용 석유였습니다.

 

1979년의 공급법에 따라, 지방 자치 단체는 기존 수요를 파악하고, 가정에서 천연가스를 사용하거나 석유를 제외한 모든 연료를 사용할 있는 훨씬 효율적인 지역 난방 시스템을 통해, 이러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했습니다. 정부는 또한 새로운 인프라가 지역난방 시스템이나 천연가스를 난방에 사용하도록 규칙 변경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지역 난방 시스템은 중앙 집중식 용광로에서 연료를 효율적으로 연소시킨 다음 (일반적으로 온수) 가정으로 운반하는 방식입니다. 시스템에는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 깨끗한 연료를 사용할 있게 되면 수십만 가구의 개별 보일러를 교체할 필요 없이 해당 연료를 사용하도록 연소로를 조정하거나 변경할 있습니다. 둘째, 중앙집중식 연소로는 열 에너지뿐만 아니라, 전기까지 생산하는 열병합 발전소의 일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효율적인 천연가스 발전소라고 하더라도, 가스 에너지의 절반 이하만 전기로 변환할 수 있고, 나머지 발전에 사용할 없는 에너지는 폐열 형태로 대기 중으로 버려집니다. 열병합 발전소는 이러한 폐열의 대부분을 사용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여, 발전소의 효율을 90%까지 끌어올리는데, 그 말은 동일한 효과를 내기 위해 적은 연료를 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가의 에너지 시스템을 변경하려면 보통은 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대부분의 소규모 지역 난방 시설은 지방 자치 단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며, 수익을 내지 않고 시민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했습니다. 이러한 지자체는 사용 연료에 대한 유연성을 부여받으면서부터, 석유만 아니라면 가장 저렴한 연료를 사용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해로부터의 천연가스 송유관로와 가정으로 연결되는 가스관 가장 투자가 필요한 일부 시설은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자금 일부는, 에너지 사용 부과금과 최종 탄소배출량 세금에서 나왔는데, 처음에는 석유와 전기(1977)로 시작해서, 석탄(1982), 이산화탄소 배출(1992), 가스(1996) 대한 세금이 부과되었습니다.

 

결과는? 1972년에서 1990 사이에 천연 가스를 사용하는 건물의 비율은 0 에서 10%, 지역 난방을 사용하는 건물의 비율은 20에서 40% 증가했습니다.5

 

짧은 역사로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엘드럽은 "완벽하게 정교한 계획 하나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쳐 도달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정부 개혁은 민간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에너지 효율의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연료, 공급 측면에서 풍부하고 저렴하게 추출할 있는 제1연료'라고 "에너지 효율성"을 정의합니다.6 간단히 말해, 에너지 효율성은 편리함은 동일하게 제공하면서도 에너지 비용을 절감한다는 의미입니다.

 

낮은 에너지 비용은 꽤나 매력적이지만, 정치인들은 에너지 효율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반짝이는 태양광 발전소나 풍력 발전소를 짓는 것이 쉽게 팔릴 이야기 입니다. 효율 등급은 높은 단열재나 가전제품을 파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이유는, 비슷해 보이지만 에너지 효율이 낮고 값싼 제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면 효과를 발휘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에 대한 세금은 사람들이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건물이나 가전제품에 승인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표기하도록하는 의무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보장하는 제도 입니다. 덴마크는 적절한 수의 정책을 도입하여 업계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했습니다. "우리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라고 엘드럽은 말합니다. "사업적으로도 성공했습니다.

 

20세기 전반기에 설립된 덴마크의 그룬포스, 댄포스, 벨룩스, 록울 4 기업은 1973 석유 위기가 닥쳤을 에너지 효율 솔루션을 준비했습니다. 그런포스는 물을 이동하고 건물을 환기하는 필요한 에너지 효율적인 펌프를 만들었습니다. 댄포스는 난방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도움이 되는 라디에이터 밸브를 만들었습니다. 벨룩스는 열이 들어는 오지만 빠져나가지 않는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Rockwool 건물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줄이는 단열재를 만들었습니다. 회사들은 덴마크의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의 에너지 효율 개선은 수십 동안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9 덴마크는 인구가 20% 증가하고 경제 규모가 배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1973년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이 20% 감소했습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동안 경제와 인구가 크게 성장한 프랑스와 스웨덴은 각각 24% 18%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습니다. 독일과 영국은 각각 9% 19% 에너지 사용량 감소로 나은 수치를 보였지만, 여전히 덴마크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BP 세계 에너지 통계 검토 2021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산한 결과입니다.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 사용을 줄였지만, 우리는 힘든 경험을 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감축할 있었습니다."라고 엘드럽은 말합니다. 정부 정책,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 기업가 정신이 얽히고 설키면서 친환경 챔피언이 탄생했다고 볼 있습니다. 외르스테드는 아마도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가장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덴마크인들이 풍력 발전을 어떻게 마스터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1970년대 정부가 에너지 개혁을 추진하던 시기에 일부 덴마크 시민들은 에너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일부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1978 유틀란드에 있는 트빈드 고등학교 학생들은 교사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풍력 터빈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트빈드크라프트는 이름 그대로 덴마크인들도 풍력을 활용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원자력 발전 지지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으로 건설되었습니다. 헌신적인 시민들이 이러한 위업을 달성할 있었기 때문에 풍력 발전을 활용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터빈은 지금도 전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 작동하는 풍력 터빈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타워의 높이는 53미터, 날개의 지름은 54미터입니다. 터빈은 900kW 미만의 전력을 생산할 있으며, 이는 5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기에 충분한 양입니다. 트빈드크래프트의 가장 위대한 유산 하나는 현대 풍력발전의 대부라고 불리는 헨릭 스티스달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7

 

1976 스티스달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무 징집으로 군에 입대할 예정이었는데, 징집 기간은 보통 몇 개월 정도에서 최대 1년까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터빈 건설 중인 트빈드를 방문했고, 그는 또래의 다른 사람들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자 마자, 영감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그는 재생 에너지와 풍력에 관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물리학 과정을 마치고 복무 시작을 앞두고 있던 스티스달은 풍력 터빈에 대한, 얕은 지식을 활용했습니다. 그가 처음 만든 터빈은 블레이드가 개였고 손에 잡을 있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일단 터빈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생동감이 느껴졌고, 바람의 작은 움직임도 모두 느낄 있었습니다."라고 Stiesdal 회상합니다. "저는 빠졌습니다. 그는 복무로 인한 휴가를 제외하고 동안 터빈을 제작하며 2날개 버전으로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서 있는 3날개 버전으로 업데이트했습니다."

 

1978 그는 같은 생각을 가진 50명의 만능 땜빵기술자들 끼리 만든 덴마크 풍력 터빈 협회(Danmarks Vindmolleforening) 가입했습니다. 실험을 하던 에릭 요르겐센이라는 현지 기계공을 만나 서로 보완적인 기술을 가진 파트너를 찾았습니다. 사람은 함께 고철과 값싼 중고 장비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은 나은 풍력 터빈을 계속 만들기 위해 돈을 구할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습니다. 가장 성공은 덴마크 기술연구소의 발명가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을 때였습니다.

 

스티스달과 요르겐센은 불과 만에 작은 마을에 전력을 공급할 있는 터빈을 세웠습니다. 하나를 짓던 스티스달은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는 2013년에 <세상을 위한 풍력 발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 1979 당시만 해도 개척자들 사이에서는 안전띠와 같은 개인 안전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설치 단계에서 저는 플랫폼의 타워 꼭대기에 서서 소형 발전기와 대형 발전기를 연결하는 벨트를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실수로 제가 벨트에 손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소형 발전기의 전원이 켜졌습니다. 저는 제가 있는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반사적으로 뒤로 뛰어내렸습니다. 18미터 높이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은 셔츠가 부분적으로 피팅에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셔츠가 찢어지고 가슴이 찢어졌지만, 소소한 새 경험을 쌓은 채로 다시 플랫폼으로 올라갈 있었습니다.8

 

터빈을 완성한 만에 현지 크레인 제조업체의 엔지니어들이 찾아왔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풍력 발전의 개발과 보급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스티스달의 설계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킬 있다고 생각했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회사가 바로 오늘날 세계 최대의 풍력 터빈 제조업체인 베스타스였습니다.

 

이후로 Stiesdal 수백 개의 특허를 보유한 풍력 엔지니어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육상 터빈을 정복한 그는 해상 풍력 터빈과 부유식 풍력 터빈을 설계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르겐센은 자신의 업적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1982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1984 이후 덴마크 정부는 전력망 가격에 관계없이 풍력 발전의 일정 가격을 보장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형 풍력 터빈에 대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었고 Vestas 같은 회사가 성장할 있었습니다. 1987 덴마크의 전력 회사인 Elkraft 당시 유럽에서 가장 3.75MW 풍력 발전 단지를 건설했습니다.

 

해상 풍력 발전의 개발은 덴마크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덴마크는 땅이 넓지는 않지만 바다를 많이 이용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해저가 얕아 해상 풍력 터빈을 세울 있을 만큼 견고한 기반을 구축할 있는 대륙붕 지역에 접근할 있었습니다.

 

1991 Elkraft 세계 최초의 해상 풍력 발전 단지인 빈데비(Vindeby) 건설했으며, 450kW 생산할 있는 11개의 풍력 터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다른 전력 회사인 Elsam 비슷한 규모의 해상 풍력 발전 단지인 Tuno Knob 각각 500kW 전력을 생산할 있는 10개의 터빈을 건설했습니다. 모두 정부가 청정 에너지 혁신 지원의 일환으로 전력 회사에 해상 풍력 발전소 건설을 의무화했기 때문에 건설되었습니다. 풍력 발전 단지는 이후 DONG 외르스테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2005 이전까지 DONG 북해에서 석유와 가스의 탐사 생산, 덴마크 전역의 가스 유통을 관리하는 국영 기업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에너지 시장 자유화를 추진 중이었습니다. 이는 다른 유럽 기업들이 DONG 독점하고 있던 사업을 놓고 경쟁을 시작할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덴마크 재무부에서 20 가까이 근무했던 엘드럽은 2001년에 DONG CEO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DONG 자산을 살펴본 결과, 가스 공급 계약이 10 이상 연장되어 있지만 이후에는 미래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종의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동이 스웨덴의 바텐폴이나 독일의 RWE 같은 유럽 에너지 기업과 경쟁할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순한 가스 회사나 유틸리티를 선택하는 방향 아니라, 모든 것을 조금씩 다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DONG 에너지 부문에서 덴마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인수합병에 나섰고, 정부는 이를 지원했습니다. 2006년까지 DONG 6개의 전력회사를 합병하여 DONG Energy 설립했습니다. 이제 석유 가스 탐사와 가스 유통뿐만 아니라 석탄 발전소, 전기 요금을 직접 지불하는 고객까지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엘크래프트와 엘삼을 인수하면서 동에너지는 엘크래프트와 엘삼의 해상 풍력 발전소 2곳과 2005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해상 풍력 발전소 1곳까지 3곳의 해상 풍력 발전소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DONG 에너지는 단숨에 해상 풍력 시장에서 세계 최대 기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안전한 곳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엘드럽은 말합니다. DONG 에너지는 생산, 송전, 소매 전체 체인에 걸쳐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2005년에 시작된 유럽연합의 배출권 거래제가 전력 부문을 대상으로 시행된 것입니다. 탄소 가격이 상승하면서 석탄 발전의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동시에, 결정적으로 코펜하겐이 2009 COP 회의의 개최지로 선정되었습니다. COP 회의 개최국 정부는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기후 목표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을 하기 마련입니다. 엘드럽은 정부의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2040년까지 화석 연료 85%, 재생에너지 15%에서 재생에너지 85%, 화석 연료 15% 전환한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하는 동안 에너지는 독일 북동부 그레이프스발트에 새로운 석탄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는 여전히 회사의 대주주였던 정부가 선정한 우선순위에 대치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환경 운동가들은 이를 주목했고, DONG 에너지는 많은 항의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엘드럽은 "석탄 발전소를 인수하는 성공했지만 결국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같다" 말했습니다. 해상 풍력에 대한 글로벌 리더십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DONG 에너지는 수천만 달러 수준의 막대한 비용을 들였던, 신규 석탄 발전소 계획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COP 2009 회의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세계는 파리에서 열린 COP 2015 회의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ONG 에너지는 기후 목표를 유지하며, 특히 영국에서 많은 해상 풍력 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지 이유로 해상 풍력 사업을 배로 늘릴 있었습니다. 첫째, 회사는 석유와 가스를 탐사하는 해양 작업에 대한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세계 최초로 개의 해상 풍력 발전 단지를 건설하면서 쌓은 기존 지식 기반과 함께 이러한 기술을 풍력 사업에 재배치할 있었습니다. 둘째, 정부 규정에 따라 덴마크 영해 밖에서는 석유 가스 자원을 개발할 없었습니다. 하지만 풍력 자원 개발에 대해서는 그런 규정이 없었다고 엘드럽이 밝혔습니다. 영국 정부는 해상 풍력 발전의 전기 공급 가격을 보장하는, 매력적인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DONG 에너지는 가장 성숙한 해상 풍력 발전 업체였고 풍력 발전 단지의 매력적인 위치를 선택할 있는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2012 DONG 에너지는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미국이 프래킹을 이용하는 국내 공급사를 찾으면서 가스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덴마크의 거대 기업은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인수 작업 직후라서, 여전히 많은 부채를 안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합병으로 인해 DONG 에너지의 신용 등급이 강등되었습니다.

 

부채 위기에서 기업은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너지는 부채를 갚기 위해, 상당수의 자산을 매물로 내놓아야 했습니다. 회사 경영진도 개편되어 헨릭 폴슨이 엘드럽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2013 에너지는 골드만삭스와 덴마크 연기금으로부터 20 달러를 투자받아 재정을 보강했습니다.9 2014년이 되자 거대 에너지 기업은 최대 고비를 넘기고, 석유 가스와 함께 해상 풍력과 관련된 자산만 남게 되었습니다. 탈탄소화 과정은 속도를 내고 있었지만 엘드럽이 상상했던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폴슨은 2016년까지 DONG Energy 대차대조표를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당시까지 세계 해상 풍력 발전 용량의 거의 4분의 1 건설한 세계 최대 해상 풍력 발전 회사로서 선두 자리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이점을 깨닫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증권거래소 상장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50 달러의 가치로 그해 유럽에서 가장 기업공개(상장)로 만들었습니다. 골드만삭스와 덴마크 연기금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습니다.

 

2017 폴센은 에너지의 석유 가스 자산을 매각하는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북해의 석유와 가스는 수십 동안 개발되어, 가격이 비싸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해상 풍력 발전의 건설 비용은 점점 저렴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폴센은 회사를 순수 재생 에너지 회사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10

 

2017 , 대부분의 화석 연료 자산을 매각한 DONG Energy 사명을 Ørsted 변경했습니다. 전류가 자기장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전기와 자기 사이의 연관성을 최초로 발견한 덴마크 과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를 기리기 위한 이름입니다. 풍력 터빈은 외르스테드가 발견한 바로 원리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합니다. 움직이는 블레이드가 자기장으로 발전기 내부의 로터를 돌리고, 결과 전자가 이동하여 우리 주변의 많은 사물에 전력을 공급합니다.

 

DONG Energy 에서 Ørsted로의 변신은, MBA 교과서에 나올만한 사례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연, 타이밍, 정책, 기업가 정신이 고루 섞인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년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기후위기 데드라인이 빡빡한 일정인지라, 사치스러운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자 하는 기업에게는 지원할 기술을 선택하고, 정부와 협력하여 배포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든 다음, 전문성을 활용하여 새로운 시장을 찾는 합리적인 공식을 적용했습니다. 상업적 기회가 외르스테드의 변화를 이끈 가장 이유일 수도 있지만, 정부의 지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외르스테드의 최대 주주로 50.1%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4 덴마크는 2050년까지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도록 법적으로 구속하는 기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과학의 요구에 따라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덴마크에서 외르스테드의 친환경 전환은 국가적 우선순위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법은 비즈니스 운영 방식을 영구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으며, 영국은 자본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법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세계에 가장 앞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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